배우 감서은의 싱글노트 9.

[배우 감서은의 싱글노트] 어린이날 하사금과 어버이날 상납금

<편집자 주> 이달부터 부산 출신 배우 감서은의 칼럼을 싣는다. 제목은 <배우 감서은의 싱글노트>로 정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살아가는 싱글의 삶, 남다른 감성을 지닌 여배우의 생각, 그리고 방송국과 촬영장서 만난 숱한 인연을 글로 담아낸다. 여기에 깊은 밤과 주말 오후에 다가온 즐거운 고민까지 연기자의 시각으로 들려줄 그의 이야기가 자못 기대된다.

어느 덧 오월이다
이즈음 우리집에는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5일이면 어김없이 아빠의 문자가 온다. 
`어린이날을 축하하며 딸 넷과 사위 손주에게 각각 10만원씩 입금했으니 좋은 날 맛난 거 사먹어라.' 

어릴 땐 1만원이었다가 차츰 3만, 5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더니 모두가 성인이 되고 부모님은 부산에, 자식들은 서울에 떨어져 살게 된 이후에는 10만원으로 굳어졌다. 
과년한 딸 셋과 시집간 딸 하나, 사위 하나, 손주 하나 10만원씩이어도 합이 60만원이다. 퇴직하고  살아가시는 아빠께 부담이 될 법한데 당신 스스로 정한 규칙처럼 한결 같으시다. 

다른 자매들은 '어린이날 하사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내 경우는 그 돈을 고스란히 두었다가 조금 더 보태어 3일 뒤 어버이날에 보내드린다. 
`낳아 주고 키워 주셔서 감사드리오며 어버이날을 맞아 그 마음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보내드림을 용서하소서.' 

그럼 또 공식처럼 전화가 온다. 
"야야, 니 형편도 안좋을낀데 뭘이래 많이 보냈노."
결혼식 예단 비용 보내고 받는 것도 아니고 매년 이즈음 되풀이되는 우리집 오월의 풍경이다. 

몇 해 전 네 자매가 모여 "이거 너무 형식적이고 웃기지 않냐"며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 때 막둥이가 이런 말을 했다. 
"딸들이 각자 어떤 상황으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시지만 혹시 누구 하나 어버이날 빈손이면 괜히 미안해하고 기죽을까봐 아빠가 미리 현금으로 보내 주시는 게 아닐까?" 
순간 뭔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우리 자매 중 유일하게 가정을 이룬 셋째와 공무원인 막내야 무슨 근심이 있으랴.
그런데 우리집에는 부모님 걱정거리 첫째 유채목 둘째 감서은, 비정규직 연기자가 둘이나 있다.게다가 미혼이다. 

아빠가 이런 과년한 딸들 기 살리려고 미리 배려해 주신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 진다. 그 깊은 뜻을 막둥이가 먼저 알았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것이 막내의 오버센스 일지라도 훌쩍 커버린 동생의 생각에 적잖이 울림을 느꼈다. 

세상 불평을 늘어놓으려 치면 한없이 불평거리가 많다. 하지만 감사하기 시작하면 그 또한 한없이 감사함이 많다. 
부모님 건강하게 살아계심이 제일 감사하고  
두 분이 연금으로 사실 수 있음이 제이 감사하고
긍정적이고 밝은 가치관을 유전해 주심이 제삼 감사하다.

올해는 부모님께서 친히 상경을 하신단다. 
그 분들이 오시기 일주일 전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 게 가장 큰 효도라 하지 않는가. 당장 해 드릴 수 있는 다른 효도는 어렵고, 혼자 사는 딸이 깔끔하게 지 앞가림은 잘 하고 산다는 '착각'을 선물해 드리려고 한다. 

서울에 20년을 넘게 살아도 무뚝뚝한 부산 딸내미는 사랑한단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참 힘들다. 
이번에는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씀드리고 꼭 안아드리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릴 적 아빠(김주형)는 저를 자주 안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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