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수달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다.
토끼, 사슴, 강아지, 고양이 등 예쁜 동물들이 많은데 왜 하필 수달인지.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기자 동료인 그와 같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듣기 싫다는데도 하루에 수십번씩 나에게 수달 수달 해대니 짜증이 확 나면서도 궁금해졌다.
"너 왜 자꾸 나한테 수달이라고 하냐? 난 싫은데! 이유라도 들어보자."
그는 필시 내가 언제 물어봐 주나 기다리며 준비를 한 것 같다. 수달 전문가라도 된 듯 첫 번째 두 번째 손가락을 꼽아 가며 말하기 시작한다.
하나. 천연기념물이다.
- 뭐지? 내가 귀하다는 좋은 뜻인가? 하긴 내가 좀 천연기념물스러운면이 있지.
둘. 서식지 부산.
- 나도 부산이 고향이긴 하다.
셋. 외모.
- 굳이 따지자면 동글동글한 짱구 두상 정도? 혹시 다른 공통점을 든다면 사양한다.
넷. 식성.
- 물에 사니 물고기 먹겠지. 나도 육고기를 안 먹어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물고기를 자주 먹는다.
다섯. 야행성.
- 변명의 여지가 없음. 나는야 뱀파이어.
여섯. 의리 있다.
-인터넷 정보에 보면, 1991년 속초에서 수달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꾸짖고 자신을 구해준 경찰에게 수달이 물고기 등 을 잡아서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사람과 교감도 하는구나. 이것 참 은근 매력 있는 놈일세. 나도 뭐 의리라면 남자 열도 못 갖다 대지.
일곱. 감각 매우 발달.
-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개코라 불리는 나와 비슷하구나.
여덟. 성격.
-평소 온순한 것 같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다.
이쯤 듣고 보니 앞서 일곱 가지 이유는 마지막 이 말을 하기 위한 밑밥이었구나 싶었다.
그가 말하고픈 핵심은, 그거다. 성격.
아빠가 내게 `땡삐'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적이 있다. '땅벌'의 방언인데 유명한 트로트 가요 '땡벌'도 같은 말인 것 같다. 이유인 즉,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톡' 쏘아 붙이면 정신이 없다는 거다. 그냥 벌도 아니고. 비교도 안 되게 독한 땡삐여야만 나를 대변할 수 있었나보다.
인정한다. 나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 어릴 때 `키디'라는 어린이 영양제를 자매 중에 나만 먹었다. 알고 보니 성장촉진과 함께 신경질적인 어린이에게 먹이는 영양제란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나는 여전히 그렇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오감이 모두 예민한데다 육감까지 발달하여, 항상 온 몸과 정신이 긴장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래서일까. 원치 않는 무언가가 신경을 자극하면 순간적으로 극도로 날카로워 지곤 한다. 25년간 똑같은 몸무게로 깡마른 내 몸이, 말 하지 않아도 내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나를 알기에 나름의 방법으로 수양을 한다. 둥글고 무디게 살고 싶은 희망을 담아 수시로 불경을 읽고, 책을 읽고, 음악을 하고, 서예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밖에서 날 만나는 사람들은 나보고 "까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격이 좋으시네요" 한다.
내게 수달이라 하는 그 친구는 가끔 "요즘은 키디 안파나?" 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럴 때면 `아 내가 또 신경질을 부리고 있나보구나' 싶어 감정을 추스르고 그냥 웃어버린다.
한동안 심하던 미세먼지가 잦아들어 오랜만에 숨 쉬는 맛이 나던 며칠 전이었다.
여전히 나를 수달이라 부르는 그에게 웃는 얼굴로 "우리 진짜 수달 한번 보러 가보자" 하고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지금껏 유심히 본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봤다. 작은 체구의 새끼 수달 세 마리가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지네들끼리 장난치고 나 잡아봐라 하면서 놀다가 금 새 한마리가 버럭 화를 내고 덤비는 모습이 나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연신 "히야 감서은이랑 똑같다 똑같다" 외쳐댄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