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심심찮게 갑질 기사를 접한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막말하고 무례하게 구는 정도는 이제 기삿거리도 안 되는 것 같다. 갈수록 천태만상이다.
백화점 점원을 무릎 꿇려 호통 치는 막가파 아주머니.
새치기를 저지하는 주차요원을 폭행하고 차로 위협까지 하는 저질 아저씨.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대는 제약회사 회장님.
가맹점주를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프랜차이즈 본사.
공관병을 몸종 부리듯 하는 4성장군 부인…
일일이 열거하지도 못 할 만큼 다양한 행태들이 빈번히 보도된다. 일부 사람들이겠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마음속에 화를 품고 있다가 자기보다 약하다 싶은 상대에게 다 때려 붓는 것 같다. 그런 사람 치고 강자 앞에서 강한 사람 못 봤다.
몇 해 전 서울의 모 아파트, 입주민에게 지속적으로 폭언과 모욕을 당하던 경비아저씨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결국 분신자살을 선택한 사건이 기억난다.
그 기사를 접하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난 한번도 경비원과 입주민이 상하관계라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아저씨라기보다는 어르신들이었고 우리는 지나다니면서 늘 꾸벅 인사를 하고 다녔다.
번호키가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경비초소에 집 열쇠를 맡기는 일이 잦았다. 상호간에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명절이 되면 제일 먼저 경비분들 양말 선물부터 챙기셨다. 울엄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주민분들도 오며가며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고 집안대소사 걱정을 해 주던 훈훈한 모습들을 보고 자랐다.
요즘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단절되고 개인적으로 변한 아파트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것이 딱 내 스타일이기도 하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집만이라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장소이길 희망한다.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아가씨냐 애기엄마냐 무슨 일하냐 식구가 몇이냐 등의 질문공세를 펴는 이웃 아주머니들이 참 부담스럽다. 지나친 관심은 사양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런 나지만 경비아저씨들 만큼은 친하게 지낸다. 매개체는 택배다. 집이 비어있을 때가 많아서 내 택배는 거의 경비초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택배를 찾을 때는 "고맙습니다" 배꼽인사를 드린다. 이따금 반품을 부탁드릴 때마다 왜 그렇게 죄송스러운지 집에 있는 음료수든 과일이든 뭐든 몇 개 집어 들고 가서 혀 짧은 소리로 말씀드린다.
"아저띠~ 죄송한데요, 도저히 택배 오는 시간을 맞출 수 가 없네요. 요거 반품 좀 부탁드릴께용."
그러면서 박스와 함께 간식을 건넨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귀찮은 내색 하신 분은 아직 없었다.
우리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은커녕 미니 냉장고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 더위에 땀 뻘뻘 흘리시며 순찰도는 그분들께 꽝꽝 얼린 생수를 드리기도 한다.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지인들의 초콜릿을 사다가 경비아저씨 네 분의 초콜릿까지 사던 날 보고 같이 간 친구가 신기해 했다. 평범한 초콜릿으로 네 사람 챙겨드리는 데에 만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걸 받은 그분들의 표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잠깐의 마음씀으로 무척 저렴하게 내 집, 내 택배, 어쩌면 내 안위까지 잘 부탁드린다는 '뇌물'을 드린 것이다.
이쯤 되면 생각 해 본다. 입주민과 경비원이 갑을 관계이면 도대체 누가 갑인건가?
난 자진해서 그들에게 갑 대접을 해 드린다. 그렇다고 절대 내가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대단히 괜찮은 인간이 된 듯한 자긍심도 느껴진다.
서로 상처 안내면서 기분 좋게 이득을 취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절차에 따라 해고를 하면 되는 것이지, 왜 이 관계에서 `갑질'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많은 갑질 사건들 중에 유독 경비원 사건이 가슴이 아팠던 것은, 이것이 비단 갑을 문제만이 아니라 노인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