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딱 이맘때였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난 문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를 두고 전문용어로 `개문발차' 사고라고 한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골절은 지금 잘 안보여서 며칠 경과를 본 후에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엉덩이를 찧으며 차에서 도로로 넘어진 터라 자고 일어나니 엉치쪽이 욱신욱신 거렸다. 뼈에 실금이라도 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이 좋은 봄날에 병원 신세라니 한숨이 나왔다.
그때 캐스팅 디렉터에게 전화가 왔다. "감서은씨 급하게 캐스팅 건이 있는데, 낼모레 시간 돼요? "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몸으로 이틀 후 과연 촬영이 가능할까 "저기…무슨 작품, 어떤 역할인가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 이라고 방송하고 있는데 아시죠? 거기에서…"
"저 돼요! 할께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박지은 작가의 작품에다가 존경하는 선생님, 선배님들 나오시고 이건 뭐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출연해야 하는 것이었다.
보험사 손해사정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촬영때만 외출을 하겠다 했더니 그건 규정상 곤란하단다. 내 편의를 봐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변에서는 눈치껏 외출해서 촬영하라며 훈수를 뒀지만 그땐 무슨 배짱이었는지 겁도 없이 퇴원해 버렸다. 그만큼 나에게 촬영은 간절한 일이었다.
촬영 분위기는 스케줄을 알려주는 에프디(FD)의 전화로부터 감지된다.
작품마다 스텝들 분위기가 다른데 넝쿨당은 살가웠다. "선배님 스케줄표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호칭은 '선배님'이었다. 내 역할이 양PD여서 난 양PD 선배가 됐다.
촬영장은 분주히 돌아갔다. 윤여정 강부자 장용 등 기라성같은 선생님들과 김남주, 유준상 선배들이 함께하는 그 작품에서 연기하는 게 정말 꿈만 같았다.
한 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니 너무 아쉬웠다. 양PD는 김남주씨의 방송국 후배로 김남주를 시기 질투하고 괴롭히는 캐릭터였다. 주인공의 직장인 방송국 장면이 계속 필요 할 것이고, 분위기상 앞으로 몇 번은 더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대본이 임박해야 나오는 상황이라 그 무엇도 장담 할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나 연락이 왔다 "양PD 선배님 또 나오십니다. 대본은 지금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야호! 사랑스러운 에프디 목소리다. 그 이후로 방송국 신이 있을 때는 거의 양PD가 등장했다. 성황리에 작품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원섭섭한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나니 에프디에게 연락이 왔다.
"양PD 선배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몇일 모처에서 넝쿨당 쫑파티가 있으니 꼭 참석해 주세요."
"제가요? 저까지 갈 자리가 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같이 고생해 주셨는데 당연히 와 주셔야죠. 그날 뵙겠습니다"
다들 얼굴이 명함이신 분들이 오는 자리에 민망함을 뒤로하고 참석을 했다. 쭈뼛쭈뼛하니까 안면 있는 선배께서 날 챙겨 주셨다. 인기리에 종영한 작품이니 만큼 많은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홀을 가득 채워서 앉을 곳이 부족할 정도였다.
유준상 선배가 사회를 봤다. K본부 사장의 축하 말씀, 감독과 작가 인사 등이 있은 후 유준상 선배가 출연자를 한분한분 호명하여 인사를 시키셨다. 주조연 소개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양PD님~ 일어나 주시죠"
허걱, 나까지 호명하여 인사를 시켜주신다. 유준상 선배와는 극중에서 마주친 적이 없어서 예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많은 분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셨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수상이라도 한 듯.
그 자리가 끝나고 2차가 있다고 했다. 에프디가 같이 가자고 잡아 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나는 차마 2차 술자리까지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딱 여기까지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기분이